‘그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자, 이 문구만 보고서... ‘굉장한 신인이 나타난건가?’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혜성’이란 표현을 주로 신인들에게 쓰니까.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신인이 아니다. 신인은커녕 연예계 선배, 그것도 대~선배에 해당하는 사람들, 바로 전설의 록그룹인 ‘백두산’의 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이다.
그렇다. 이들은 록커다. 검은 가죽바지에 긴 머리, 징 박힌 구두와 치렁치렁하다못해 걸리적거리기까지 한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록커라 이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변했다. 잠깐 록커의 본 모습을 접고(?), 예능계에 들어와서 각종 오락프로그램을 휘저으면서 수퍼루키로 떠올랐다. 그것도 혀가 마치 작두 타듯 사람들이 예상치못한 입담과 특이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면서 방송 제작진에겐 섭외 1순위 인물로, 시청자들에겐 재미있는 아저씨들로 말이다.
도대체 이들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유머감각이 적중한 것 같다. 대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노련한 게스트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에겐 그날 녹화 분위기와 함께 출연한 게스트들간의 조화 등등을 따져서 적절한 때에 치고 빠지는 기술이 있다.
그런데, 유현상, 김태원, 나이든 락커 오라버니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어, 주변 상황, 게스트 등을 별로 상관치 않는다. 그저 그 순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나 행동이 있으면 그냥 바로 바로 즉각적으로 저지른다. 앞뒤상황 따지지 않는 일명 밑끝 개그(밑도끝도없는 얘기)가 너무 재미있다 이 말씀이다.
요즘 시청자들은 똑똑하다. 방송쟁이들을 능가할 만큼 아이디어가 넘치며,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다음에 이런 대사를 치겠구나까지 예상할 만큼 똑똑한 시청자들이 많다. 이런 시청자들도 이 두 오빠들의 유머는 미리 예상할 수가 없으니, 앞뒤상황 따지지 않고, 주변 상황, 주변 게스트 눈치보지 않고 막 던지는 그들의 유머가 뻔하지 않다. 신선하다. 그래서 좋다 이 말이다. 이게 어디 시청자들만의 감정일까? 방송쟁이들의 눈에도 그들의 눈치없고, 철딱서니 없는 모습은 대환영이다.
그렇담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눈치없을 수 있을까? 56세 유현상과 45세 김태원, 중년 아저씨들이 어쩜 그렇게도 철딱서니 없을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추측컨대 이미 인생을 겪을 만큼 겪어봤고, 세상풍파 알만큼 다 알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악플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소심하게 계산하고, 따지지 않고, 눈치보지 도 않으며, 멋있어 보이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그대로, 자신의 개성, 자신의 색깔을 마구마구 발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 유현상이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김태원이 자신을 예능계로 끌어들인 거라고. ‘형님, 예능을 하니 오히려 록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라며 말이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치~하며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예능계의 늙은 수퍼루키, 유현상, 김태원을 보면서 ‘록커’가 저렇게 인간적인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여름에도 습진 걸릴 것처럼 두꺼운 가죽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한 달에 샴푸 두 통은 쓸 정도로 긴 머리를 흩날리는 록커들은 이상하게 좀 먼 곳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다른 대중가수들과는 또 다른 사람들처럼 보였다. 왠지 말투도 거칠 것 같고, 정신세계도 독특해서 평범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 같지 않는 ‘부류’였다 이 말이다. 그랬던 ‘록커’들이 유현상, 김태원을 통해서 약간은 주책스런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해졌다. 그러니 ‘록’이 몇 박자에, 어떤 비트인지 잘 알진 못해도 김태원의 얘기는 성공한 게 아닐까?
물론 이 두 명의 오래된 오빠들에게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다. 혹자는 록커가 체신머리 없이 왠 예능? 이냐며 비꼬고, 혹자는 나이들어 주책바가지라고도 말하며, 또 다른 혹자는 외모가 비호(?)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 맞다. 이 모든 반응들 맞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빅뱅이나 2PM이 훗날 20~30년 후에 이들처럼 좀 철딱서니 없어보이는(?) 예능계의 수퍼루키로 등장한다면...? 아마도 지금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 팬들 역시 과거를 회상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그 때의 젊은이들은 또 2000년대의 가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살짝 상상해보니 꽤 즐겁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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