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현철은 똑똑한 바보다. 촬영차 떠난 시골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가 자신을 1907년생이라 소개하자 김현철의 입에서는 대번 "아, 아니 그럼 할머니는 볼셰비키 혁명 때 태어나신 거예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실소와 탄성이 동시에 터진다. 김현철 식 개그다.
그가 언제인지 궁금한 사건들을 말해보라기에 신라 통일부터 갑신정변, 병인양요 등등 가물가물한 국사 속 사건들을 말했더니 망설임 없는 답이 술술 이어진다. 다문 입이 안 다물어지는 기자를 보며 김현철은 "박학다식이 아니라 잡학다식"이라며 겸손해했다.
-훈민정음 외우기 같은 역사·문화 지식이 방송 도중에도 툭툭 튀어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외운다. 방송과는 상관없다. 평소에도 자동차에 미술사 책, 국사 교과서를 두고 틈나는 대로 본다. 하지만 뭐든 외워두고 담아두면 끄집어내게 돼 있다. 그 중에서도 교과서 내용 같은 보편적인 것들이 재미가 있더라. 다들 기억에 있으니까.
-박학다식이라 할까? '똑똑한 바보'다.
▶'잡학다식', '설렁설렁'이 좋다. 너무 많이 알면 잘난척하는 것 같고, 너무 몰라도 무식해보이고. 그 선을 찾기가 힘들다. 나는 박학다식이라기보다, 잡학다식이 아닐까? 학교 다닐 땐 수학이랑 영어시험은 다 찍고, 국어나 세계사 같은 건 한두 개만 틀리고 다 맞았다. 그게 나름 도움이 된다. 디테일한 개그가 되니까.
-방송인으로서 말더듬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더 그런 쪽에 집중한 건 아닌지.
▶사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어눌한 사람이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재밌지 않나. 하지만 마음먹은 걸 설렁설렁 하지는 않는다. 가령 오케스트라 지휘 하는 걸 흉내낼 때는 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위치까지 다 염두에 두고 지휘를 한다. 내가 외모를 봐서는 좀 설렁설렁하고 막걸리 타입이 아닌가. 의외로 예민하고 꼼꼼하다.
-늘 그런 소재를 준비하나?
▶준비했다가 안되면 어떡하나. 그런 건 없다. 다만 '올웨이즈 온에어' 준비 상태다. 언제라도 가능하게. '세바퀴' 처음 출연할 땐 집에서 TV보다가 저녁에 녹화하러 오라고 해서 갔었다. 나야 큰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박을 노리거나 꿈꾸지도 않았다. 지금의 관심도 사실 부담스럽다. 레이더에 안 걸리고 낮게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요새 '단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까지 꿰찼다. 자선과 나눔이 모토인데.
▶내 모토는 사람을 돕지 못하더라도 피해 주지 말고 살자는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 안 끼치고 사는 것만 해도 좋은 사회를 위해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아편전쟁이 도화선이 돼 청일전쟁이 일어났듯, '세바퀴'가 도화선이 돼 '단비'에 출연하고 말았다. 남 안 돕고 피해 안 주고 살았던 인생이지만, 이제 '단비'를 통해 그나마 조금 갚게 된 거다.
-'단비' 촬영은 쉬운 게 하나도 없겠더라.
▶찍으면서 '야 이거 못 할 프로다, 그만둬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남을 어떻게 즐겁게 돕나. 캄보디아 촬영 갔을 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 동네 모기가 다 모이는데, 그것 때문에 조명을 켜도 어두울 정도였다. 뭐에 비유해야 될까. 영화 '미이라'의 한 장면처럼 사람이 까만 모기떼에 휩싸여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다.
하지만 고생은 스태프가 더하다. 한 번 물리면 BB탄 총에 맞은 것 같은 고통을 수십 수백 번 참아내며 흔들림 없이 조명과 카메라를 붙들고 계신 분들이다. 말 그대로 나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 평소 같으면 앓아누워야 되는데 못 눕고 찍었다. 힘들기만 했는데 '단비'도 어느 순간부터는 웃음을 찾아가고 있다. 감동과 함께 재미를 주는 게 우리 몫이니까.
-이제 나이 40인데, 결혼 생각은 없는지.
▶아직은 생각이 없다. 방송용으로 말해도 되나? '한 사람에게 잘 할 자신이 아직 없어요. 나도 추스르기 어려운 걸요~'
-10년쯤 뒤엔 어떤 개그맨이었으면 좋겠나.
▶10년쯤 뒤엔 후배들에게 존경하는 선배가 누구냐고 하면 10명 중에 두세 명이 언급하는 선배가 되면 좋겠다. 그 정도면 정말 성공한 인생이다. 그 정도면 만족한 희극인 인생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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