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술과 여자는 어떤 의미? 허허허"(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0.05.06 10:40
홍상수 감독 ⓒ머니투데이

세계관이 완성된 작가에게 새로운 작품이란 늘 예전과 비슷하다는 평이 따르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국내에 그런 평을 듣는 영화 작가에 홍상수는 첫 손에 꼽힌다.

홍상수 감독이 10번째 작품 '하하하'를 관객에 선보인다.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예의 영화들처럼 지나치기 쉬운 비루한 일생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하하하'는 영화 감독 지망생과 영화 평론가가 통영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비슷한 인연을 겪은 것을 토로하는 내용. 기존 홍상수 영화가 비슷한 인연이 교차하는 도돌이표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영화는 과거를 현재처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차이를 둔다. 술과 여자는 여전하다. 홍상수 감독은 "그냥 만들었다"고 하지만 '하하하'는 분명 그의 영화가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완성된 시나리오도 없이 현장에서 즉석 대본을 배우들에 주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즉흥연주로 완성도를 높이는 재즈 같은 작업방식인데. 정작 영화에 재즈를 쓰지는 않는데.

▶재즈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흥미롭다. 그런 점은 닮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즈보단 클래식을 좋아한다. 정해진 틀이랄까.

-초기 작품은 일정한 룰이 있었다면 점점 애드리브 같은 작업이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3편 정도까진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트리트먼트를 쓰다가 그 양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제는 현장에서 느끼는 감성들을 영화에 담기도 한다.

-이번 영화는 어땠는지. 제목도 길거리에서 본 간판에서 착안해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일단 통영이라는 공간을 먼저 정했다. 어머니 고향이라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보는 것들이 덩어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순신 장군과 때어놓을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녹아들어갔다.

공간을 정하고 두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풀어간다는 형식을 결정했다. 박물관도 가보고 문화관광을 해설하시는 분도 복. 그런 이미지들이 영화를 하다가 점점 구체화됐다.

('하하하'는 김상경과 유준상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통영에서 겪은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재를 스틸사진으로 사용해 과거처럼 앨범처럼 표현한 대신 과거를 현재처럼 풀었다. 문소리가 문화재를 해설하는 여인으로 등장, 김상경과 김강우 사이를 오가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뜻인가.

▶형식과 내용은 분리되는 게 아니다. 소재에서 형식이 나오기도 하고, 형식이 내용을 유도하기도 한다. 왜 우리가 과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이 느끼는 정서까지 같이 전해지지 않나. 똑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전해지고. 그런 시각들을 끌어오게 된다. 파편화된 기억과 형식을 새롭게 조형해 발견의 정도까지 낳으려 하는 것이다.

(홍상수 월드의 영화들은 그랬다. 같은 날의 기억들이 각각 다르게 전해지고, 다른 느낌으로 풀이됐다. 똑같은 대사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하하하'는 좀 다르다. 뫼비우스 띠처럼 되풀이되던 영상들이 이번에는 포개져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야기를 하나씩 주고받는 형식에서 과거와 다른 지점이 등장했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보다 부드러워졌다는 평이 많은데. 문소리는 이번에는 이불을 덮어줬다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각자 보는 방식에 따라 다른 법이니깐. 대답에 대한 회피가 아니다. 만들 때 튀어나와서 하나로 완결이 되는 식으로 작업한다.

-배우들에게서 작은 것을 포착해 등장인물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본도 즉석에서 주는 만큼 연기자들이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나.

▶내가 정해주면 배우들이 얽매일 수 있다. 가두는 게 싫기도 하고. 수천가지 포인트 중에서 3~4가지를 내 관점으로 만든다. 다들 내 방식에는 잘 적응하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정해서 끼어 맞추는 게 아니니깐.

(이에 대해 유준상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유준상은 홍상수 감독님은 한 신에서 30~50가지 디렉션이 있다고 했다. 대화를 할 때 각각의 표정과 주변 반응, 눈짓까지...그래서 한 신을 찍을 때 20번이 넘어가면 몽롱해지고 30번이 넘어가면 이해가 되면서 나중에는 하나로 녹아들어 자연스러워진다고 했다. 그게 배우들에 자극이 된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칸에 6번째 초청받았는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현실적인 일들을 하고. 그 중에 하나가 영화제에 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

-꼭 영화 감독들이나 지망생들이 등장하는데.

▶영화감독이 귀엽잖나. 인물의 직업군을 선택할 때 인터뷰를 하고 만드는 게 표피적인 것 같다. 일상적인 것을 접하려면 내가 잘 아는 것을 그러야 하고.

-홍상수 영화에 술과 여자는 어떤 의미인가.

▶여자는 허허. 왜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여자를 사귀다보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확 알게 되는. 이거다 싶은 순간. 그런 순간을 영화에 담고 싶다.

술은 우리 문화잖나. 술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고. 실제로 술을 가리지는 않는다. 다만 섞는 술은 싫어하고 와인은 몸에 안맞는 것 같고.

(그의 술 취향은 영화와도 닮았다. 다른 장르와 혼합되는 걸을 싫어하고 와인으로 대표되는 있어 보이는 척 하는 것은 맞지 않는. 홍상수 감독은 강남에 살지만 그의 영화는 강남영화와 거리가 멀다. 작업방식이 재즈와 닮았지만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과도 닮았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8월에 갈 것 같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작품에 가을이나 겨울을 담더니 최근 들어 여름을 주로 담는데.

▶그냥 더 여름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가을, 겨울이 좋았는데 이제는 여름이 더 좋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는 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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