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말미에 김태희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렇게 시니컬한 사람과 사는 분이 어떨지 궁금하다"면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김태희가 달라졌다.
김태희가 2003년 SBS 드라마 '스크린'을 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8년 가까이 봐왔지만 긴장을 유지하는 관계였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김태희는 울타리 안으로 쉽게 사람을 초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랬던 그녀가 달라졌다. '중천' 인터뷰 때 탁자를 두 손으로 치며 "저한테 안좋은 기사를 쓴 적이 없으시다구요?"라고 했던 게 김태희가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냈던 사례였다. 맞다.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며 처음으로 기사화했던 게 기자다.
드라마 '아이리스'를 했을 때 무슨 일이 생겼던 게 분명하다. 김태희는 '아이리스' 즈음 홀로 독립했고, 곧바로 '그랑프리'에 도전했으며, 바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출연을 결심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호박도 찔러봐야 직성이 풀리던 그녀로선 꽤 빠른 행보다.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많이 상처받고 그래서 심사숙고하고 신중하게 했는데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든 호평과 혹평은 따를 때고 내 태도를 바꾸고 싶었어요"란 말도 뒤따랐다.
가장 식상한 질문을 세 가지만 대달라고 했다.
"왜 이 작품을 했냐" "상대 배우가 어땠냐"고 바로 이야기했다. 바로 전 왜 '그랑프리'를 선택했냐고 물었던 참이었다. 9월16일 개봉하는 '그랑프리'는 한 때 좌절했던 여자 기수가 주위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어 그랑프리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 임수정의 '각설탕'과도 비교될 수 있는 영화, 홀로 전면에 나서야 할 작품, 예전 김태희라면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태희는 "선입견이에요"라고 생글거리며 말했다. "평가야, 이제는 예전만큼 상처받고 좌절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물론 지금도 신경쓰지만 예전에는 말로 도전한다고 했다면 이제는 실천을 한다는 게 달라졌다고 할까요"라고 했다.
김태희는 이른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목표, 서울대'라고 붙여놓고 공부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연기할 때 그녀의 목적과 접근 방법은 늘 그랬다. 그랬던 그녀가 부딪히고 본다고 했다.
"예전에는 제작보고회 같은 걸 할 때 어디서 사진을 찍을지 모르니 항상 긴장했어요. 일부러 밝은 모습 보이고 최대한 예쁜 표정 짖고. 지금은 굴욕사진 찍히더라도, 뭐." 씨익 웃었다. 싱긋이 아니라 씨익 웃었다. 김태희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김태희는 "양윤호 감독님이 '아이리스'를 함께 한 터라 제 장단점을 잘 알았던 게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카메라가 코앞에 있으면 어쩔 줄 몰라하는 성격을 아는지라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다가와 찍었다는 것이다.
기수니 머리도 짧게 잘라야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임수정씨가 단발이라 앞머리만 잘랐다"고 받았다. 그리고 "'각설탕'은 말과 사랑"이라더니 "아! 말과 우정이지, 사랑이면 애마부인이잖아"라며 푸하하 웃었다. '그랑프리'는 휴먼 드라마라는 점이 다르다면서.
그동안 기댈 언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다고 했더니 "그것도 선입견이에요"라며 "얼마나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라며 받았다. "'아이리스'를 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게 됐어요. 예전에는 물어봐야 하는데도 소극적이라 못했는데.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양동근 선배랑 빨리 친해져야 해서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참 많이 했어요."
양동근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빛났다. "정말 천재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아이리스'를 하면서 이병헌과 열애 소문이 돌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진심으로 기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상대역과 한번도 비슷한 소문도 돌지 않았다. 그건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단 소리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으로 "정말 기뻤다"고 했다. 김태희는 "내가 마음을 열고, 연기를 잘했다는 소리니깐요. 이상한 루머보다 훨씬 반가운 소리였어요"라고 했다.
'악마를 보았다'로 만난 이병헌은 김태희에 대해 "여배우라면 기가 세야 할텐데 너무 순수해서 여배우로 살기 훨씬 힘든 친구"라고 했었다. 김태희는 '아이리스'를 통해 약간의 자신감과 실천하고픈 생각, 그리고 용기를 얻었던 게 틀림없다.
홀로 독립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김태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크고 안전한 회사에 있다보니 안일해지는 것 같았어요. 이제 승부를 던질 때도 됐고. 주체적으로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하라고 해서 했다는 핑계도 되지 않고 오로지 제 탓인거죠"라면서 "조금은 강해진 것 같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식상한 질문 세번째는 뭐냐고 물었다. "연기력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예쁘다, 서울대 출신이다" 등등을 한 묶음으로 말했다. 연기력, 미모, 학력은 이제 자신에게 우선적인 게 아니란 뜻이다.
사람들이 김태희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이 뭘 것 같냐고 했다. "별 고민 없을 것 같다. 모범생일 것 같다. 감성보단 이성적일 것 같다"란 답이 바로 나왔다. "예쁘단 소리는 없군요"라고 했더니 "어떻게 제 입으로"라면서 웃었다. "좀 순수하지 않나요"란 말도 뒤따랐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안보려 했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려 했어요.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얻었죠. 기대도 많이 하시고. 그러다보니 제 성격을 개조하다시피 바꾸고 있어요. 제가 가진 좋은 것은 유지하면서."
모범답안 같긴 하지만 지금 김태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김태희는 "주체적으로 한발 한발 나가고 싶고 그게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저고, 그게 '그랑프리'에요"라고 했다.
정답만 계속 나오는 것 같아 "왜 '놀러와'는 나가면서 '무릎팍도사'는 안나가냐"고 했다. 곁에 있던 마케터가 "'무릎팍도사'는 혼자 나가야하고 '놀라와'나 '승승장구'는 양동근과 함께 나갈 수 있지 않나"고 급히 말했다. 억울한 표정을 잠시 짓던 김태희는 "부인이 어떤 분이신지 정말 궁금해요"라고 했다.
"부인한테만 잘하다니 나쁜 남자에요"라고 눈을 흘기더니 "그런 남자가 또 좋은 남자죠"라고 더했다. 김태희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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