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에게 물은 '황해' 질문 20가지

전형화 기자  |  2010.12.29 16:46
나홍진 감독 ⓒ양동욱 인턴기자
'황해'는 시작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하정우, 김윤석이 다시 한 번 뭉친데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이십세기폭스사가 한국영화에 처음으로 투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보통 영화 촬영 기간의 3배가 넘는 촬영기간, 120억원 가까운 제작비 등 물량도 상당하다. 두 번째 장편 상업영화를 찍는 감독에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들려온 각종 잡음은 유령처럼 영화계에 떠돌았다.

개봉을 이틀 앞둔 20일에서야 기자시사회를 할 정도로 후반 일정에 쫓기기도 했다. 결과는 5일만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추격자'보다 하루 빠르다. 관객들의 반응은 걸작이란 평과 '추격자'보다 못하다란 평으로 나뉘고 있다.

올 겨울 한국영화계에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황해'의 나홍진 감독을 만났다. 그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인터뷰 내내 다리를 떨 만큼 초조해보였다. 피 칠갑을 했더니 요즘 단 것만 찾는다며 연신 초콜릿을 집어 먹었다. (스포일러 있음)

-상영은 2시간 37분 버전인데 3시간 30분짜리 감독 버전이 따로 있다는 소리도 있던데.

▶지금 상영 버전이 최종 버전이다. 3시간 30분은 가편집본이고. 감독 버전이라고 따로 하기에는 그만한 분량이 없다. 처음 찍을 때부터 지금 분량을 염두에 뒀다.

-260신이 넘는 시나리오에 촬영도 170회차가 넘었는데.

▶지금 버전이 최종 버전이란 건 찍은 분량이 없다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에 맞는 편집본이 이게 최선이란 소리다. 이야기에서 모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컨대 구남의 처로 보이는 여자 얼굴을 위에서 찍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장면도 있다. 또 교수 부인과 태원(조성하) 불륜녀 옷이 같다는 것도 더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찍은 장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아차리는 분들만 알도록 더 모호하게 가도록 보여주고 싶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영화를 네 단락으로 나누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인가.

▶그렇다. 각 단락마다 기차가 가고 있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기차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서 포기했다.

-앞에 두 번째 단락까진 구남(하정우)의 시점으로 영화가 흘러가다가 세 번째 단락부터 시점이 면가(김윤석) 등의 시점이 혼재된다. 그러면서 인물에 대한 몰입이 줄어들고 멀리서 지켜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추격자'보다 몰입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데.

▶이런 구성으로 영화를 끝내고 싶었다. 누가 날 죽이려 쫓아다니면 누가 죽일지 그런 시선으로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남 시점으로만 찍었으면 영화가 더 짧아졌을 것이다. 시점이 바뀌는 것은 우연도 있고 의도도 있다. 클로즈업을 할 때 핸드핼드로 흔들리게 찍다보니 망원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멀게 찍게 되면서 더 거리감이 느껴지게 됐다. 의도는 질문한 것처럼 지켜보게 만들고 싶었다.

-구남이 아내를 찾는 게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었는데 아내가 죽었다고 믿게 되면서 자신에게 살인을 의뢰한 사람을 찾는 것으로 바뀐다. 쭉 뻗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잘라버린 이유가 있다면.

▶결국 모호함 때문이다. 구남이 아내가 죽었다고 믿어야 이 사람이 오판하게 되고 오판을 하게 된 게 4막으로 가는 이유기 때문이다. 끝까지 모호함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관객이 있는데.

▶글쎄 찾으려고 애쓰지 않으면 불친절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네 단락으로 나눈 데다 각 장마다 제목까지 쓰지 않았나.(웃음)

-복수에 매료된 것도 아니고 살인에 탐닉한 것도 아닌데 그런 세계를 그린다. 특히 여성관은 내심 궁금한데.

▶무언가를 쫓아다니지 않고 이야기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다. '황해'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가 아랍 사람이 밥 먹는 것을 보고 떠올렸다. 그 이미지랄까? 그냥 불안정함, 불안함, 도시의 차가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왜 서해가 아니라 황해인가.

▶취재를 하러 바다를 건너면서 배 위에 오래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제목이 떠오른 것 같다. 혼탁한 느낌.

-동시대 한국 이야기라기보다 동시대 어디에 놓아도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다. 조선족이 아니라 멕시칸 갱이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그만큼 장르적이란 뜻인데.

▶말한 것처럼 아랍 친구를 보고 떠올린 이야기다. 굳이 조선족일 필요는 없다. 이런 장르로 은유한 것일 뿐. 조선족 취재를 하면서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순수함이랄까, 면가 역시 순수한 폭력 아닌가.
나홍진 감독 @양동욱 인턴기자

-면가가 휘두른 뼈다귀 종류에 대한 궁금증도 일던데.

▶소 뼈다귀다. 돼지 다리뼈는 짧다. 면가가 소뼈다귀로 사람을 때려 죽이는 장면은 이 사람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폭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뼈다귀를 무기로 사용하도록 했다.

-뼈를 휘두르는 장면은 '올드보이'의 장도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던데. '살인의 추억'이나 '대부'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고.

▶그런 영화들에 어마어마하게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오마주는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카체이싱도 훌륭했지만 음악이야말로 대단하던데.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정말 대단하시다. 사실 내가 음악을 입힌 영화를 본 게 기자시사회와 큰 차이가 없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나 그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음악이 살인을 이끌지 않나.

-카체이싱 장면은 자동차들이 사람처럼 치고받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는데.

▶자동차들이 면가와 구남, 캐릭터 그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처럼 자동차 역시 누가 누굴 죽이려 드는 게 느껴지도록 했다.

-1년 여 동안 촬영이 이뤄지면서 감독이 독재자라는 둥 별의별 소문이 떠돌았다. 긴 시간을 그런 소문들 속에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내 눈 앞에 자동차가 날라다니는 데 그런 데 신경쓸 틈이 없지 않나. 그냥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재미있었다. 빨리 완성하고 빨리 붙여서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잔혹한 이야기를 1년 가까이 계속 한다면 쇠심줄도 버티기 힘들텐데.

▶그래서 쉴 때는 밝은 걸 찾았다. 코미디를 계속 보고. 요즘도 달달한 것을 입에 달고 산다.

-각 단락마다 색 보정도 다르다. 뿌옇다가 점점 어둠이 짙어지는데.

▶점점 차가움이 표시됐으면 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온도와 끝날 때 온도를 재보면 얼마나 낮아졌을까,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과연 이 도시가 이 사람에게만 차갑나, 아니면 모두에게 차갑나,를 묻고 싶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추격자'는 밸런타인데이에, '황해'는 크리스마스에 개봉했는데.

▶죄송할 뿐이다. '추격자' 때 하도 궁금해서 극장에 갔더니 어떤 여자 관객이 '미친 새끼 아냐'라고 하시더라.(웃음)

-소포모어 징크스가 불안하지 않았나.

▶다른 게 불안한 게 아니라 기대를 많이 하고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을까 불안했다.

-개병이 돈다는 내레이션부터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까지 길잡이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그러니깐 친절한 영화라니깐.(웃음) 이 영화는 편집과정에서 선택의 폭이 무척 넓었다. 하정우 시점으로 죄다 편집할 수도 있고. 엔딩에 논란이 필요했던 것도 같고. 뭐 마지막 단락 제목은 김윤석 선배가 동방불패가 어떠냐고 하더라.

-'추격자' 할리우드 리메이크 우선 감독권을 갖고 있는데 미국에 가나.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아직도 '황해' 한가운데니깐. 그래도 내가 멜로영화를 찍을 건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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