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돼지가 착할 것이란 편견을 버려①

전형화 기자  |  2011.11.01 08:54


한국 애니메이션엔 편견이 있다. 애들이나 보는, 작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야기가 없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아류라는, 하청 능력은 있지만 창작 능력은 없다 등등.

이런 편견을 단 번에 깨부수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11월3일 개봉하는 '돼지의 왕'(감독 연상호)이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이다.

강렬하다. 에너지가 꿈틀댄다. 돼지가 암탉과 친구라고 생각하고 극장문을 두들겼다간 큰 코 다친다. 오히려 독립영화 돌풍을 일으켰던 '똥파리' 친구라고 생각하면 더 맞을 듯하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돼지의 왕'은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한국영화감독조합 감독상, 무비꼴라쥬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다. 감독과 관객, 프로듀서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단 뜻이다.

'돼지의 왕'은 회사가 부도난 뒤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15년 전 중학교 시절 친구를 찾아 당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쫓는 미스테리물이다. 현재를 비루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좋았던 과거를 꿈꾸기 마련이다. 좋았던 과거란 적당히 포장되고 윤색된다.

하지만 '돼지의 왕' 속 중학교 시절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과거 두 사람은 왕따였다. 부모가 돈 많고,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는 아이들 속에서 두 사람은 그저 돼지였다. 먹이를 주는 대로 그저 웃기만 하는. 부잣집에서 자란 매끈하고 잘생긴 아이들이 세퍼트처럼 물고 뜯어도 눈 한 번 제대로 뜰 수 없다.

그런 두 사람에게 어느 날 영웅이 등장한다. 그 소년은 가난하고 남루하지만 강한 이빨을 갖고 있었다. 그 이빨로 세퍼트들을 단숨에 제압한다. 그는 돼지의 왕이었다.

돼지의 왕은 그러나 결국 돼지였다. 선생님까지 합류한 세퍼트 무리와 싸울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 그 무리들에 덤비려다 이내 꼬리를 내린 전학생 친구는 "뭘 바꿀 수 있겠냐"며 참으라한다.

그럴 때 돼지의 왕은 자살을 결심한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뛰어내려 그들에게 좋았던 한 때로 중학교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리라 결심한다. 죽음으로 적들의 심장에, 평온한 일상에 돌을 던지려 한다. 돼지들을 대신해 왕이 십자가에 오르려 한 것이다.

이후 '돼지의 왕'은 복마전처럼 이야기와 감정들이 얽히고설킨다. '돼지의 왕'의 선택은, 그리고 문제를 던지고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전은 놀랍고도 강렬하다.

돼지들은 왕이 미치고 불평등한 이 세상에 구세주가 되길 바라지만 왕은 끝내 순교를 거부한다. 절망한 돼지들은 미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 구원은 없다. 대속도 없다. 그저 절망 뿐.

'돼지의 왕'은 1억5000만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독립 애니메이션이다.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마당을 나온 암탉'이 30억원이 투입된 가족물이라면 독립영화처럼 제작된 '돼지의 왕'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중학교 시절 힘과 폭력, 부모의 재력 등으로 벌써부터 나눠지는 계급사회를 폭력적이고 강렬하게 그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한국사회 모순이 보다 깊어지면서 더욱 일그러지고 뿌리가 깊어졌다. '돼지의 왕'은 바로 그 지점을 이야기한다.

결말로 치닫는 마지막 15분은 사건을 재구성하돼 허리띠를 잡고 끌어당기듯 힘이 넘친다.

엔딩에서 그곳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돼지의 왕'은 "이곳은 차가운 아스팔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라고 답한다. 2011년 대한민국을 찾은 '돼지의 왕'은 이 미친 세상을 구원도, 대속도 하지 못한다. 그저 차가운 곳이란 현실을 일깨운다.

'돼지의 왕'이 올해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등장한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저력이 튀어나온 하나의 사건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사는 2011년을 '마당을 나온 암탉'과 '돼지의 왕'이 출연한 해로 기억할 것이다. 나이키를 신고 싶었으며, 게스 청바지에 로망이 있던 사람들에게 특히 '강추'다. 11월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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