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해 상반기 어딘가 헐렁한 마초 카사노바 장성기를 맛깔스럽게 연기하더니, 하반기에는 묵직한 사극에서 카리스마 허균으로 낯빛을 바꾼 류승룡, 이번에는 6세 수준에서 지능이 멈춘 '딸 바보' 아빠 용구다.
라면마저 섹시하게 만드는 '더티섹시' 계보의 선두주자 류승룡, 이번에는 카리스마와 섹시함을 쏙 빼고 순수함으로 무장했다. '해피해피 해피마트'를 외치는 교도소 7번방의 초대형 폭탄 용구가 관객들까지 '해피해피'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영화 개봉을 앞둔 21일 오후,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류승룡을 만났다.
온라인상에서는 소위 '약 빨았다'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황당하거나 신기하거나, 혹은 놀랍다는 의미다.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 촬영과 '7번방의 선물' 개봉이 맞물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류승룡은 심한 몸살에 걸려 세 가지 약제를 한 번에 들이킨 후 인터뷰에 임했다. 진정한 의미의 '약 빨고 한 인터뷰'다.
'더티섹시'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류승룡, 물론 적절한 수식어이긴 하지만 사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한 사람을 한 마디 수식어로 표현한다는 건 어렵죠. '더티섹시'라는 말은 한 기자가 처음 만들어냈다는데 어울리고, 적절한 것 같아요. 영화계에 더티섹시 계보가 3명 있어요. 하정우, 김윤석, 류승룡. 개인적으로는 '심(心)스틸러'라는 말이 제일 맘에 들어요. 신을 훔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훔친다는 것이잖아요."
거친 외모의 소유자 류승룡에게 '섹시'를 더해준 영화는 누가 뭐래도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에게 인지도와 신뢰감을 더해줬다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자신의 틀을 깨는 작품이었다.
"조정석도 그렇고 나고 그렇고, 코미디 연기로 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장성기가 사실 정극 연기는 아니잖아요. 뮤지컬 같기도 하고 과장하기도 하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스스로 생각했던 틀을 과감히, 위 아래로 깨준 통렬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아내' 다음에 허균을 선택한 건 그런 캐릭터에 대한 기대치를 빨리 없애기 위한 것이었어요. 상상을 자꾸 깨는, '이럴 것이다'라는 예상을 깨는, 그런 것이 좋아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능글맞은 마초 장성기는 영화에서 끝나지 않았다. 최근 한 라면 CF에 출연한 류승룡, 이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라면'이 나올 만큼 화제가 됐다.
"자꾸 라면CF만 얘기하면 안되는데(웃음). 다른 광고도 많은데 형평성에 문제가 있잖아요. 처음에 콘티를 보고 충격적이었고 신선했어요. 용기 있다는 느낌? 굉장히 편안하게 놀았던 것 같아요."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능이 모자란 대신 순수함과 딸에 대한 사랑은 넘치는 인물이다. 류승룡 자신이 생각하는 모자란 점은 무엇일까.
"기다리는 걸 잘 못해요. 간에 열이 많아서 그렇대요. 집안 내력이에요. 시간 약속에 대해서도 굉장히 예민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그런 부분이 제게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 의심도 잘 못해요.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죠. 의심을 못 한다는 게 부족하다는 걸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장점은 뒤끝이 없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기다리고, 촬영을 기다리고, 개봉을 기다리고. 영화는 기다림이 끝이 없는 작업이다. 기다리는 것을 못한다는 그가 배우로 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영화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도 사실 잘 못 기다리긴 해요. 아무리 기다림의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나 싶을 때도 있고. 비효율, 불합리가 제일 싫어요."
'7번방의 선물'로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류승룡, 반대로 영화를 통해 그가 얻은 선물을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훌륭한 동료들을 얻는 것이라고 곧바로 답했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인만큼 부담도 클 법하지만 든든한 배우들 덕에 오히려 걱정을 훌훌 털었다.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너무너무 예쁜 딸을 하나 얻었고, 너무나 훌륭한 동료들을 만난 게 선물이죠. 어마어마한 선물인 것 같아요. 정태는 촬영할 때 허리가 워낙 안 좋아서 엉금엉금 기어 다녔어요. 옆에 누워있거나 늦거나 해도 아무도 눈치를 안 줬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이번 영화 하면서 그런 배려들을 굉장히 많이 생각했대요. 소원이는 어린 아이인데 오히려 지구력이 저보다 나아요. 대단한 친구예요."
이번 주말까지 빽빽하게 잡혀있는 홍보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 류승룡은 곧바로 촬영장으로 향할 예정이다. 차기작 '명량, 회오리바다' 촬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제일 힘들 때예요. 촬영초반이라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긴장되고요. 영화 개봉하고 겹쳐서 몸도 지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2월까지 쉬는 날 없이 계-속 일하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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