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했다. 아니 당당했다. 목소리는 가라앉았지만 둘만의 눈빛은 뜨거웠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가 불륜을 인정했다. 3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기자들 앞에서다.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 없이 터졌다. 그래도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은 살가웠다. 굳이 숨길 것도, 숨길 필요도 없는 듯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둘 만의 공간이었다.
13일 서울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시사회는 홍상수 감독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취재진이 몰렸다. 보통 홍상수 감독 기자시사회는 200석도 안되는 극장에서 열려도 절반 가량 밖에 차지 않기 마련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가 예상과 달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불륜설이 불거진 뒤 9개월 만에 한국 공식 석상에 나란히 등장하겠다고 발표한 셈이다. 둘이 과연 무슨 말을 할지, 엄청난 이목이 쏠렸다.
더욱이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에 이날 시사회는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사회 신청이 조기마감됐기에, 자리에 못 들어간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호원이 기자간담회장을 통제해 밖에서 다투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이례적이었다. 다 이례적이었다. 기자간담회가 먼저 포토타임이 나중인 여느 기자간담회와는 달리 포토타임이 먼저였다. 이유가 있었다.
권해효 등이 먼저 사진을 찍은 뒤 이윽고 김민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나기라도 내리는 듯한 플래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홍상수 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둘이 같이 섰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담담했다.
사회자가 먼저 이례적인 소감을 물었다. 다들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권해효가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영화로만 관심과 집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김민희가 함께 한 동료들에 대해 차례로 설명했다. 담담했다.
마이크가 기자들에게 돌아갔다. 첫 질문이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불륜설에 대한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둘의 불륜설이 불거진 이래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해외 영화제에 간간이 나갔다가 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나란히 참석했을 뿐, 한국에선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민희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디렉터스컷 시상식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도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작심한 듯 했다. 질문을 들은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서로 다정스레 쳐다본 뒤 귓속말을 나눴다. 이윽고 홍상수 감독은 "이야기를 할 자리인지 모르겠다"면서 "저희 두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객석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홍상수 감독은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보도 때문에 불편한 일도 있었고 외국에서는 기자들을 만나면서 한국에서는 안 만나는 것도 그러니 정상적으로 영화 만들어서 기자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부분은 개인적인 부분이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도 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김민희는 "진심을 다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있다"며 "저희에게 다가오는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9개월 만에 불륜 인정이다. 두 사람은 그걸 사랑이라고 했다. 분명 사랑이다. 둘 만의 사랑.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김민희에게 다른 영화는 출연하지 않고, 홍상수 감독 영화만 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김민희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예술영화를 하겠다"고 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만 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날 공개된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에서도 비슷한 상황과 대사들이 등장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 영화감독과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배우의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극 중에서 김민희는 "그런 일 때문에 연기 그만두면 안된다"는 선배의 말에 "연기 그만 둔 적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영화 제안이 왔지만 (돈만 바라는)쓰레기 같은 영화"라고도 했다.
김민희는 기자간담회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만 하겠다기 보다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지는 않는다"며 애둘렀다. 담담히 말하는 김민희를 쳐다보는 홍상수 감독의 눈은 따스했다.
따가운 세간의 시선에 대해서도 당당했다. 담담했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 속에서 보면 '할 일이 없어 남의 사랑 갖고 뭐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국민감정과 다른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은 "국민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다"며 "국민이라기 보다 그냥 어떤 분들의 생각들이다. 처지와 성격, 환경들로 사안들마다 다들 생각이 다르지 않나"고 했다. 이어 "제 주위나 김민희 주위의 생각들은 또 다르다"며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고 그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동의할 수 없어도 구체적으로 피해주거나 법에 저촉하는 게 아니라면 제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나도 남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즉 자신도 남들을 존중하니, 남들도 자신들을 존중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둘만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보는 시선 교환은 계속 됐다. 사회자가 첫 질문 외에는 카메라 플래시는 터뜨리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듯 했다. 카메라 기자가 놓치기에는 너무 둘만의 시선이 살가웠고 따스했고 애틋했다.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자회견장 분위기와는 달리 적어도 그곳은 그랬다. 둘 옆 자리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배우들도 한 마디도 못하고 앞만 쳐다봤다.
권해효가 "어떻게 됐든 영화는 재밌지 않냐"며 사람 좋게 웃었다. 쥐 죽은 듯 반응이 없자 어색하게 다시 웃었다.
홍상수 감독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어떤 이유로 이 자리에 왔든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민희와 자리를 떴다. 다시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갔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세계는 23일 개봉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김민희가 쏟아내는 대사는, 다른 배우들의 입을 빌어 토해내는 대사는, 홍상수 감독의 또 다른 자아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그렇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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