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산:용의 출현' 재미와 의미에 취하는 129분 ①

전형화 기자  |  2022.07.20 10:18
"지금 우리에겐 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

'한산:용의 출현'의 목표이자, 김한민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1592년 4월. 조선은 왜군이 들이닥치자 단 15일만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에 처한다. 설상가상 한양을 탈환하려 모였던 조선 근왕군은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 군의 기습에 패주했다.

나라는 누란지위에 처했지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왜군을 막아내며 바다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임금인 선조는 평양마저 버리고 의주로 도주하고 그 소식은 조선군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린다. 수군은 전략을 놓고 격론에 빠진다. 왜군이 포진해 있는 부산포를 공격하자는 이순신 수하들과 임금마저 파천하는 이 때는 수세인 만큼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경상우수사 원균의 주장이 대립한다.

이순신은 고민에 빠진다. 마침 적을 두렵게 했던 거북선마저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고 출정이 어려워졌다.

한편 왜군 장수 와키자카는 이순신의 수군을 무찌르면 단숨에 조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지상과 바다에서 동시에 이순신을 공략하는 전략을 세운다. 뿐만 아니라 거북선을 두려워하는 군사들에게 거북선을 맹인선이라 부르게 해 조롱하게 하는 한편 거북선과 이순신 진영을 염탐하는 계획도 세운다. 게다가 같은 편이지만 원수 같은 아군까지 불러모아 강력한 전투선까지 준비한다.

적의 성세와 아군의 위기, 강력한 비밀무기인 거북선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순신은 고민한다. 그는 한 번의 승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 이 불의한 전쟁에서 판세를 뒤집을 압도적인 승리를 원한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 학익진을 준비한다.

1592년 음력 7월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의 명운을,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해전이 벌어진다.

'한산:용의 출현'은 '명량'으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김한민 감독이 8년만에 선보이는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김한민 감독은 '한산:용의 출현'을 세 가지 전제로 만들었다. 하나는 임진왜란이란 전쟁이 조선 대 왜라는 나라 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불의에 맞서는 조선의 의군과 불의에 맞서려 투항한 왜군 장수 항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둘은 준비된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적의 기세를 꺾고 전쟁의 판세를 바꾼 건, 유비무환 정신으로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를 위해 이 영화에는 이순신 장군이 지키면서도 공격하는 진법인 학익진을 어찌 준비했는지가 그려진다.

셋은 거북선이다. 김한민 감독은 거북선을 '한산:용의 출현' 또 다른 주인공으로 삼았다. 기록과 그림 몇점에 남아있는 거북선을 영화적으로 구현해 비밀병기로 선보인다.

김한민 감독의 이 세 가지 전제는 '한산:용의 출현'을 잘 만든 전쟁영화 이상의 울림을 주는 바탕이 됐다.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공감을 얻도록 영화 속에서 의미와 재미를 쌓아가다가 마침내 2022년에 왜 이순신 장군의 영화가 당도해야 하는지를 관객에 공감시킨다. 투박하고 직접적이지만, 시대에 불변하는 의는 투박하고 직접적인 법이다.

'한산:용의 출현' 서사는 '명량'과 비슷하다. 1시간 18분까지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고 남은 51분 동안 해전이 펼쳐진다. 전반부 드라마가 첩보전으로 긴장감을 더한다면, 후반부 해전은 기승전-거북선-학익진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명량'의 61분 해전이 좁은 바다에서 외롭게 싸운 전투의 기승전결이었다면, '한산:용의 출현' 해전은 넓은 바다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기승전결로 이뤄졌다. 아군과 적군의 전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긴장을 쌓는다. 유인과 매복, 학익진과 어린진, 화포와 조총, 판옥선과 세키부네가 충돌한다. 이 충돌 한 가운데 거북선이 질주한다.

이 해전의 설계는 매우 좋다. 시종 일관 긴장감이 몰아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범선 전투와는 궤가 다른 해전의 묘미가 구현된다.

'한산:용의 출현'은 '명량'보다 캐릭터 빌딩이 좋다. 무엇보다 평면적으로 그려졌던 '명량'의 왜군과 달리 '한산:용의 출현' 왜군은 입체적이다. 특히 왜군 장수 와키자카(변요한)를 뛰어난 장수로 그려,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항왜(김성규)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그런 탓에 조선군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다. 손현주가 연기한 원균을 제외하고. 손현주는 원균을 역사의 기술 그대로 얄밉게 잘 그려냈다. 이 원균의 캐릭터마저 이순신 장군의 뛰어남을 더 두드러지게 만든다. 결국 '한산:용의 출현' 모든 캐릭터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더 두드러지도록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북선의 활용은 좋다. 김한민 감독은 아직도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거북선을 영화적으로 재탄생시켰다. 거북선의 머리인 용두가 충파의 역할만 수행했을지, 함포는 어떻게 사용됐을지, 거북선의 약점은 무엇이었을지, 철저히 고민하고 그 결과를 영화에 녹였다. 이 활용이 절묘하다. 고증과 영화적 허용 사이의 균형이 좋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은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최민식과 전혀 다르다. 고요한 물 같다. 그 탓에 뜨거운 불 같은 최민식보다 덜 인상적이지만 그 덕에 한산해전의 이순신 장군과 잘 어울린다.

'한산:용의 출현' CG는 좋다. 한 낮의 바다와 그 바다 위를 달리는 조선 판옥선과 왜의 세키부네가 큰 이질감이 없다. '한산:용의 출현' 음악은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자아낸 일등 공신이다. 해전의 음악 사용은 매우 좋다. 미술은 자칫 생경할 수 있는 왜군 묘사를 생생하게 받아들이는 데 주효했다.

'한산:용의 출현'은 어쩔 수 없이 '국뽕'(민족 감정을 일컫는 은어)이 차오른다. 국뽕에 취하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다. 129분 동안 국뽕과 재미에서 의미를 찾는 건 관객의 몫이다.

7월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추신. 엔딩 크레딧에 '한산:용의 출현' 제작진이 고안한 거북선 설계도가 등장한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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