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기흥 후보의 당선이 점쳐졌다. 체육계에서는 여러 '사법 리스크'에도 현직 회장이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이 후보의 3선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선거 유세를 통해 '반(反)이기흥' 노선을 취했던 후보들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이 후보에게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한 체육계 인사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각종 비위 혐의로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기흥 후보가 3선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였다.
반대로 유승민 후보는 예상을 뒤엎고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됐다. 유 후보의 당선은 마치 그가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이른바 난공불락의 중국 만리장성을 허물고 금메달을 획득한 것과 같은 기적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없던 불리한 선거 구도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한체육회장 당선은 의미가 깊다. 우선 유승민은 사상 3번째 경기인 출신 대한체육회장이 됐다. 최초는 김종하(1934~2019) 회장으로, 양정고와 육사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한 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거쳐 대한체육회장이 됐다.
유도 선수로 뛰었던 김정행(82) 전 용인대 총장도 경기인 출신의 대한체육회장이었다. 김정행 전 회장은 2013년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선거는 경기인 출신간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김 전 회장은 탁구 선수 출신의 이에리사(71)와 경쟁에서 승리했다.
1920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가 창립한 이래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한체육회장 자리는 주로 정권 실세들이 차지했다. 자유당 시대의 이기붕(1896~1960), 박정희 정권의 실세 박종규(1930~1985), 5공화국의 2인자 노태우(1932~2021)와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던 김정길(80)등이 대표적이었다.
기업인 출신의 대한체육회장도 적지 않았다. 현대 그룹을 키운 정주영(1915~2001), 두산 그룹의 박용성(85), 대교 회장이었던 강영중(76)과 우성산업개발 창업주였던 이기흥 전 회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은 허심탄회한 소통이다. 지금까지 대한체육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톱다운 방식의 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래서 유승민 신임 회장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양한 체육계 종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 추진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승민 회장은 당선 후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당면 과제들을 정부와 대화로 함께 풀 수 있다면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이) 잘 풀릴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수 시절부터 유승민 신임 회장의 최대 장점은 겸손함과 솔직함이었다. 이런 그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것은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유승민은 중국의 왕하오(42)를 제압하고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을 땄다. '탁구는 중국을 위해 만들어진 종목'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중국이 세계 탁구를 압도했던 상황에서 터져 나온 기적 같은 승리였다.
하지만 당시 유승민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선수를 제압했다는 기쁨에 도취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중국이 최강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왕하오를 이겼지만 (내가) 실력에서 밀린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는 부담이 컸고 나는 부담이 없었기에 나온 결과다"라고 인상적인 소감을 밝혔다.
21년 전 세계 최강 왕하오를 제압하고 했던 진솔하고 겸손한 말처럼 한국 체육계는 그가 권위의 상징이었던 대한체육회장의 이미지를 바꿔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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